역대 조선 왕들의 릉(무덤)

역대 조선 왕들의 릉(무덤)

 
1945년 대한민국이 일본으로부터 해방되었다. 그 이전 1910년 일본에게 국권을 빼았기고 1945년까지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없었다. 대한민국 이전에는 '조선'이 있었다. 조선은 왕권국가로 총 27대까지 왕위가 유지되었다. 
왕들도 사람이기에 무덤이 있다. 왕들의 무덤은 특별하다. '릉'이라고 한다. 조선의 수도였던 한양의 사대문을 중심으로 서울을 비롯한 경기도 구리, 남양주시 등에 주로 릉이 조성되어 있다.


조선에서 업적을 남겼거나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왕들을 중심으로 왕들의 릉을 정리해보았다. 

 

조선 역대 왕들의 무덤

태조 - 건원릉 (동구릉,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 개요

한양 동쪽에 9개의 능이 모여있다 하여 동구릉이라 이름이 붙었다. 릉이 점차 늘어나면서 동오릉, 동칠릉으로 불리다가 효명세자가 안치된 이후 동구릉이라는 이름으로 굳었다. 
건원릉은 조선의 1대 왕, 초대 왕인 태조 이성계의 릉이다. 위화도 회군으로 조선을 건국한 왕이다. 동구릉에는 건원릉을 필두로 하며 

동구릉 위치 (경기도 구리시)


  

태종 - 헌릉 (서울시 서초구)

태종의 릉, 헌릉
헌릉은 왕자의 난을 일으켜 형인 정종의 왕위를 빼았고 (사실 정종은 별로 왕이 되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인 태조 이성계가 태종이 왕이 되는 걸 원치 않았던 것 같다) 조선의 3대 왕이 된 태종의 릉이다. 조선이 세워진 초기, 어지러운 국정을 바로잡기 위해 칼을 서슴없이 빼들고 무참히 신하들을 숙청한다. (태조 이성계는 아마 이런 점을 미리 간파하여 태종의 왕위 계승을 반대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덕분에 아들인 세종은 정말 편하게 정치를 할 수 있었고, 한글창제라는 위대한 업적도 남기게 된다. (아버지가 터를 잘 닦아 놓아서, 아들이 거기서 활약을 펼친 것) 
헌릉 지도 위치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위치하고 있어 어디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 선릉과 태릉은 지하철 2호선, 6호선의 이름이라 사람들이 꽤 알고 있으나 헌릉은 잘 모르고 있다. 

세종 - 영릉(경기도 여주시)


한글을 창제하고 조선의 황금기를 이끈 조선의 4대 왕, 세종대왕의 릉인 영릉이다. 한글 창제만으로도 엄청난 위업인데 그 외에도 백성들을 위해 우리가 모르는 많은 것들을 만들고 바꿔나간 군주이다. 
세종대왕의 릉, 영릉
의외로 경기도 여주시인 서울에서 꽤 먼 곳에 릉이 조성되어 있다. 영릉이 경기도 여주로 간 연유가 있다. 세종의 릉은 아버지 태종의 옆인 헌릉에 조성되었다. (세종 본인이 원하였다.) 하지만 바로 풍수가인 최양선이라는 사람이 '여기는 후손이 끊어지고 장남을 잃는 무서운 자리입니다(절사손장자)'라고 반대를 하였으나 세종은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근데 실제로 세종의 장자, 그 장자의 장자가 죽어나간다. 
아들인 문종(세종의 첫째, 장자), 손자인 단종(문종의 첫째, 장자)까지 요절을 하게 된다. 거기에 세종의 아들이자 단종의 삼촌인 세조의 첫째아들(의경세자)도 세조의 아들인 예종의 첫째아들(인성대군)도 승하했다. (실화인가..)
장손들이 요절하는 게 무덤의 터(최양선의 풍수)때문에라는 걸 세조의 아들인 예종은 이를 심상치 않게 여겨 세종의 릉을 경기도 여주시로 이장한다. 그래서 지금의 여주시에 영릉이 조성된 것이다. (정확히는 이장을 한 것)



 

단종 - 장릉 (강원도 영월군)


유일하게 비수도권(강원도)에 위치한 릉이다. 단종은 세조에 의해 폐위되고 어린나이에 죽음을 맞이했다. 정식으로 왕으로 임명되지 못했기에 왕이 아닌 노산군으로 불리었다. 단종이 어린나이에 왕이 되었던건 몸이 약했던 아버지 문종의 죽음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을 노려 단종의 삼촌인 세조가 왕이 되고자 조카인 단종을 몰아세우고 죽음에 이르게 한다. 
그래서 시신조차 남겨지지 못할뻔 했으나 엄흥도라는 자 덕분에 시신이 보존될 수 있었다고 한다. (감사합니다)


세조 - 광릉 (경기도 남양주시)

단종을 폐위시킨 왕으로 유명한 세조의 무덤인 광릉이다. 세조라는 왕은 영화 '관상'의 조연인물로 나오기도 했다. 광릉은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하고 있으며 국립수목원과 붙어있다. 


세조 - 내가 왕이 될 상인가

 

성종 - 선릉 (서울시 강남구)

선릉은 우리에게는 조선의 법전인 경국대전을 완성한 왕으로 유명한 성종이다. 이재훈이 출연한 영화 도굴의 소재가 되기도 했던 곳이다. 선릉은 강남 한복판에 있는 릉으로, 그때는 허허벌판이었지만 21세기 한국에서는 한국의 핵심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지하철 2호선, 9호선, 수인분당선의 역사명으로도 되어있다. (선릉역, 선정릉역) 조선시대에서 과연 강남이 이렇게 클지 알고있었을지는 미지수다. 

선릉 위치 (서울의 핵심위치)

 

선조 - 목릉 (동구릉, 경기도 구리시)



목릉은 조선의 14대 왕이자, 임진왜란이 일어났던 해에 재임하고 있던 왕인 선조의 릉이다. 천원지폐, 오천원지폐의 인물인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가 선조 대의 사람이다. 
태조 이성계의 릉인 건원릉과 같은 동구릉에 조성되어 있다. 




중종 - 정릉 (서울시 강남구)

선릉과 함께 강남 한복판에 위치한 정릉이다. 정릉은 중종의 릉으로, 중종은 폭군이었던 연산군을 폐위시키고 중종반정으로 왕위에 올랐다. 기묘사화 등 당쟁으로 인해 힘든 시기를 보낸 왕이다. 

 

인조 -  장릉(경기도 파주시)

임진왜란 다음으로 조선시대에 일어났던 외세의 침략, 병자호란이 있다.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재임하고 있던 왕이 바로 인조이다. 인조는 선대 왕이었던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인조반정으로 왕위에 오른다. 
인조는 병자호란, 정묘호란 등 청나라에게 굴복하는 굴욕적인 상황을 겪은 왕이다. 이때부터 조선이라는 나라가 기울기 시작했다. (이후 당쟁, 세도정치, 매점매석 등 여러 부패가 발생하고 나라가 나라가 아니게 됨)
광해군은 당쟁으로 인해 피해자로써 반정이 일어났던 건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대동법 등 국정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한 왕으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도 잘 알 수 있다. 
광해, 왕이 된 남자 중 한장면

 

영조 - 원릉(동구릉, 경기도 구리시)

영조 - 원릉
영조 - 원릉
원릉은 영조의 릉으로 동구릉에 조성되어 있다. 영조는 재임기간이 가장 길고 장수했던 왕으로 유명하다. 탕평책, 균역법, 신문고 부활, 동국문헌비고 집필 등 국정 개선에 많은 힘을 썼고 좋은 성과를 낸 왕이다. 
이렇게 열심히 살았던 때문인지, 자신의 아들인 사도세자도 앞으로 조선을 잘 이끌어주기 바라는 마음에 어릴때부터 심하게 다그쳤던 것으로 보인다. 이로인해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사도세자는 비뚤어지게 된다. 재임 말년에는 사도세자를 뒤주에 갇혀 죽게 만드는 일이 벌어진다. 

영조 - 원릉
영조 - 원릉

 

정조 - 건릉(경기도 화성시)

정조 - 건릉
정조 - 건릉

건릉은 정조대왕의 릉으로, 유일하게 경기도 화성시에 조성되어 있다. 정약용과 함께 조선후기 부흥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던 왕으로 수원화성을 세우고 규장각 설치 등 주선의 부활에 많은 기여를 한다. 
정조는 영조의 손자로,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사도세자 사건을 어릴때보고 많은 충격을 받았던 터라 올곧게 자라지는 못했다고 하나, 생각보다 통치는 잘 해내어 조선 후기 뛰어난 왕으로 평가받고 있다. 

정조 - 건릉
정조 - 건릉

 

고종 - 홍릉/ 순종 - 유릉 (경기도 남양주시)


조선의 마지막 국왕이자 대한제국의 초대이자 마지막 왕인 고종과 그의 아들인 순종의 릉인 홍릉, 릉이다.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한다. 
조선의 국왕이기도 하지만, 아비와 아들이 같은 곳에 묻힌 뜻깊은 곳이기도 하다. 고종은 흥선대원군의 아들도 척화비를 세운 아버지와 다르게 신문물을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한다. 하지만 일본의 손아귀에 놀아났기 때문에 본인에 뜻에 맞는 통치는 할 수 없었고 워낙 조선 후기가 어지럽고 혼란스러웠기에 힘든 재임기간을 보냈으리라 생각한다. 


 
 

마무리하며

재위기간 강제로 왕위에서 물러나면 종, 조를 붙여주지 않고 '군'을 붙여주었다. 조선 27대 왕 중에 연산군과 광해군이 있다. 그래서 연산군과 광해군은 '릉'이 아닌 묘라고 불리운다. 왕의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서울 도봉구에는 연산군의 묘, 경기도 남양주시에는 광해군의 묘가 있다. 
광해군의 묘, 연산군의 묘


또한 북한에 위치한 릉이 2개가 있다. 
태조의 1대 왕비 신의고황후의 제릉
2대 왕인 정종의 릉, 후릉이다. 

조선 왕들의 릉을 조사하다보니 경기도 구리, 남양주시에 꽤 많은 무덤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뜻은 구리, 남양주가 터가 좋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아무래도 강을 건너지 않아도 되고 한양과 가깝다는 이점과 더불어 가장 풍수지리가 좋은 곳으로 골랐다고 생각한다. 
인간도 동물이기에 풍수지리 등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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